[경주여행] 김유신장군묘, 삼국통일의 대업을 이룬 신라의 영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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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경주여행/김유신장군묘 ♬


신라의 김유신 장군은 삼국통일의 대업을 이루는 데 가장 공헌이 큰 신라의 영웅입니다.

김유신은 신라의 정통귀족이 아닌 금관가야의 왕족으로 신라왕족이었던 김춘추와 힘을 합쳐 삼국통일의 위업을 이루어 내었습니다.

그 공으로 죽어서 왕으로 추존받아 <흥무대왕>이라 불렸고 그의 무덤도 왕릉의 형식을 갖추게 되죠.

살아서는 왕이 아니었지만 죽어서 왕이 된 김유신장군묘를 소개합니다.


* 여행일자: 2014년 8월 31일 (일)









태종무열왕릉에서 출발한지 5분이나 걸렸을까....

이내 김유신장군묘의 주차장에 도착합니다.

물론 여기에도 관람료를 받고 있는데 일인당 500원이랍니다.







주차장에서 계단을 밟고 올라서니 비각 하나가 눈에 들어오는데요.

삼국통일안치소 비각이라 하더군요.

한번쯤 살펴보고 가시는게 좋을 것 같다는 생각입니다.









이제 김유신장군묘를 향해 발걸음을 옮깁니다.

입구에 흥무문이라고 새겨진 문 하나가 늠름하게 자리를 지키고 있는데 주변의 나무들과 어우러지면서 신비한 느낌을 주고 있습니다.

경주의 유적지를 돌다보면 느낄수 있는 점이 관리가 참 잘되어 있다는 것인데 이 곳 역시 조경과 시설물들이 예사롭지가 않네요.







흥무문을 통과하자 멋진 산책로가 이어집니다.

시원하고 상쾌한 내음이 제 코를 스쳐 지나가는군요.

다만 아쉬운점은 이 길이 흙길이었으면 더 좋지 않았을까 생각되는군요.









일반인의 무덤치고는 굉장히 화려하게 장식이 되어 있다는 느낌이 드는데요.

김유신의 무덤은 흙이 내려앉는 걸 보호하기 위해 주변에 돌을 두르고 그 돌 위에 시간과 방향을 상징하는 열두 마리의 동물을 조각 했는데 전형적인 통일신라시대의 왕릉 형식을 갖추고 있다고 합니다.

봉분을 따라 두르는 난간둘레석도 참 인상적입니다.

아무튼 일반 능에서는 볼 수 없었던 것들이 많이 보입니다.

김유신장군묘는 경주 송화산 동쪽 구릉 위에 자리잡고 있는데 묘는 지름이 30m에 달한다고 하지요.











가까이 다가가서 무덤을 바라봅니다.

무덤의 정면 앞에 자리잡은 아이 키만한 상석이 인상적입니다.

그리고 무덤의 뒤쪽으로 보이는 울창한 나무숲도 매우 강렬해 보이네요.

또한 양쪽 앞으로 세워진 비석 두 개가 아주 특이하게 느껴집니다.







조금전 언급한대로 능 앞쪽에는 두개의 묘비가 서 있는데요.

그 중  하나는 태대각간이라는 직위를 새긴 비석이고 다른 하나는 흥무대왕의 비석입니다.

지금 보시는 비석에 <신라 태대각간 김유신 묘>라고 적혀있는데 김유신의 태대각간이라는 직위를 새긴 비석이죠.







그리고 반대쪽의 이 비석이 김유신이 죽고 나서 추존된 흥무대왕의 비석인데요.

이 비석에는 재미있는 사실이 담겨져 있습니다.







김유신 장군이 돌아가신지 90년 후에 그의 업적을 기리기 위하여 흥덕왕은 김유신 장군을 흥무대왕이라 승격하고 그의 후손들을 왕손으로 대우했다고 합니다. 

그리하여 묘비를 다시 세우게 되는데 칭호는 왕이라 해도 진짜 왕들의 눈치를 살피느라 ‘능’이라 하지 못하고 대감이나 장군에게 쓰여지던 ‘묘’를 새기게 되었죠.

차후에 후손들이 왕이면 ‘능’자를 붙이는 것이 옳다하여 ‘묘’자 위에 시멘트를 바르고 ‘능’이라는 글자로 고치게 됩니다. 

그런데 원래의 묘비 재질과 달라서 비가 오면 이 글자 하나만 색깔이 달라져 원래의 ‘묘’자가 보인다고 하여 글자가 바뀌는 비석이 되어 버렸다고 하네요.

즉, 비가 오면 ‘묘’자가 되고 마르고 나면 ‘능’자가 되는 비석이랍니다.









김유신장군묘는 봉분을 돌아가며 난간 둘레석과 십이지신상이 장식돼 있습니다. 

이 십이지신상은 시계의 시간위치에 맞춰 정확하게 위치하고 있지요.

지금 보시는 그림이 말그림인데 이 말그림은 12시, 즉 정남향을 가르키고 있는데 그 오차가 전혀 없다고 합니다.

1300여 년이 지난 오늘날에도 화려하고 장엄함이 느껴지는 무덤이 아닌가 생각되는군요.







이번에는 묘의 뒤쪽에서 담아봤습니다.

흙을 동글게 쌓아올려서 아래에 십이지신상이 새겨진 봉분을 만들고 그 둘레를 난간으로 둘러친 특이한 모양의 김유신장군묘입니다.

조금 높은 곳에서 바라봐서 그런지 더욱 눈에 확 들어오는 것 같군요.











사실 김유신장군묘의 진위에 대해서는 아직도 많은 논란이 있다고 합니다.

신라의 수많은 왕릉 중 이의를 제기하지 않는 왕릉은 무열왕릉을 비롯한 7곳밖에 되지 않는다고 하는군요

그렇게 보면 이 무덤도도 김유신 장군의 무덤이라고는 확신하지는 못할 것 같습니다. 

안타깝지만 천오백 년이라는 시간이 지났고 그 시대를 증명하는 역사 자료가 충분하지 않기 때문이죠.









이제 김유신장군묘를 뒤로 하고 주차장으로 향합니다.

역사는 한 인간이 열심히 살면서 그 인생을 마무리하게 될 때는 이미 그 인생이 곧 역사가 된다고 생각합니다.

김유신 장군은 세상을 떠나서야 살아있을 때보다 더욱 높은 자리인 이 되었습니다. 

자신의 자리에서 항상 최선을 다하여 결국에는 최고가 된 김유신 장군의 정신을 다시 한번 가슴에 새기면서 포스팅을 마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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